<이방인의 사회학>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위로받았던 부분은, 사람들은 나와 주변을 '안다'고 확신하고 그 '앎'을 삶의 처방전처럼 쓴다는 점이다. 고정된 삶의 양식은 언뜻 안정적이고 절대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이지만, 결국 이방인의 시선에서 그것은 "그렇게 하기로 구성한 것"이다. 나는 삶의 낯선 부분에서 오는 외로움과 불안함을 내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당연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남들이 내게 "그렇게 해야지"라고 부여하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쉽게 흔들리지만 그만큼 쉽게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예전에 상담사로부터 "자아는 주변과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지는 거야. 혼자 성 안에 갇혀있으면 만들어지지 않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존을 관찰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내가 놓여있는 환경을 관찰해야 한다. 나는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떤 것을 무슨 이유로 하고, 그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외부의 자극과 변화는 무엇인가. 이걸 알려면 나는 나를 구성하는 나의 세계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이방인이 되어보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생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쉽게 눈에 들어오고, 유효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행동 목록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걸 실천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데, 정작 실행할 만큼의 체력과 시간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변은 이런 나의 성격을 "교사 같다", 책임감이 강하다 혹은 오지랖이 넓다, 피곤한, 사서 고생하는, 대단한, 공익에 도움되는.. 등등으로 평가해주는데 나는 그 평가를 쉽게 내면화한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 더 빨리. 그 '나쁜 평가' 뒤에는 '너 좀 덜 고생하고 지낼 순 없니?'라는 마음이 깔려있어서 더 쉽게 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학생을 마주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걸 빨리 해결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나의 교사로서의 자아가 견고해진다. "교사니까 그렇게 해야지."
그런식으로 만들어진 자아들이 많다. 교사로서, 딸로서, 여자친구(이제는 아내)로서, 직장 동료로서, 친구로서, 동생으로서, 며느리로서, 강아지와 고양이의 보호자로서...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들은 나의 자아를 만들어 주었다. 그중 교집합이었던 '책임감'은 나의 가장 강한 자아가 되었다.
중요한 건 언제든 이 자아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견고해진 자아는 변화는 상황에 대처하는 처방전을 만들어 주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가둬서 답답하게 만든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보면서 평생 스트레스 받을 수 없다. 굨은 내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깎여서,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학생들을 살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해야할 것은 현재의 내 자아에 매몰되지 않고 변화를 준비하는 거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큰 위로가 된다.
요약하면, 평생 이러지는 않을 거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변할 거다. 그건 어려움을 마주할 때 그 어떤 것보다 큰 위로다.
시간이 흐를 때 너무 느리다고 느껴지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하고(오히려 좋아 마인드로) 아주 소박한 것들을 끌어모아 안는다. 그래서 나의 힘든 시간 안에는 다채로운 취미와 좋아하는 것들로 도배되어 있다. 여러 게임과 애니들, <왕좌의 게임>, <세 얼간이>, <반지의 제왕>, 크림 도넛, 보리차, 드립 커피, 요리와 좋은 주방 도구들, 등산, 구구들과 살옹이, 야구, 와인, 복숭아... 저게 뭔데? 싶겠지만 나의 삶을 견디는데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한 고마운 것들이다. 앞으로도 더 많이 생기겠지. 어려움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까.
그 중 등산... 을 노렸는데 긴 산책이었던 주말 공개
저런 숲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네. 근처 동네 사는 ㅎㄹ랑 ㅅㅎ를 불러서 가볍게 걸었다. 오구와 함께, 넷이서.
우리는 4코스로 출발해서 1코스로 내려왔다.
가는 길에 이런데도 보고.
조금 올라가니 고인물 파티였다.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이런 곳이 있었다고?!
사진도 남겨 보고
자기 근처에 낯선 아저씨가 다가오니 ㅅㅎ를 믿지도 않으면서 괜히 바짝 붙다가 발까지 밟아버린 오구
방구석 여포라서 밖에만 나오면 촉각을 곤두세우기 바쁘다.
단풍놀이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낙엽 실컷 봤다.
알고보니 이 코스는 시댁과 우리집을 오고갈 때 늘 가던 길을 걸어서 돌아보는 거였다. 익숙한 곳을 바른 방식으로 둘러보니, 하나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육교를 건너서
은행잎 쌓인 동촌유원지로 빠져 나왔다.
동네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동네가 아니었다. 걸으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내 동네가 되었다.
다음엔 걸어서 수성구로 넘어가볼까 ㅎㅅㅎ
국물파 ㅅㅎ랑 고기파 ㅎㄹ
잘 먹는거 보니 그냥 좋음. 뭔가 엄마 마음.
이거 하자~ 하면 그러자~ 하는 쿵짝이 좋다.
커피랑 케이크는 먹느라 사진을 까먹었네
신나게 떠들었는데
아무튼 삶의 위로거리가 많다.
학부 시절 못알아보던 이방인이 추가된 것은 올해 가장 뜻밖인 지점이긴 한데ㅋㅋㅋ
당분간도 삶의 어려움과 마주할때 이정표로 쓸 것 같다. 나이 들어갈 수록 고집이 생긴다던데, 그 고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부드러운 자아의 테두리를 가져야지. 유연해져야지. 그치만!!! 그러면서도 내가 선택한 본질은 잊지 말아야지.
내 혼인 서약서에서 가장 메인인 부분도 그 본질이었다.
가끔 그 처음의 순간을 잊고 서로가 미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이에 놓인 본질은 결국 사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함께 이겨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결혼말고도 삶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 히히
오글거리지만 등산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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